국채보상운동 속 숨겨진 의인
(義人)

국채보상운동 속 숨겨진 의인(義人), 그들의 이야기를 살펴본다.

남자들에게 양보하지 않는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선 여성들

국채보상부인회 관련 기사
(‘남자들에게 양보하지 않는다’, 대한매일신보, 1907년 3월 6일자)

남북촌 여러 가문의 부인들이 모여, 국채보상부인회사무소를 대안동 고판서 김규홍의 집으로 정하고 의연금을 모집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부녀자들은 운동에 간절하고도 열성적인 의지를 불태웠다.

우리, 남자들에게 뒤지거나 양보하지 맙시다.

부인회의 회원이었던 이일정은 모임이 활발해지자 취지를 설명하고 부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강연을 하기 위해 그의 남편 이준을 초청했다. 부녀자들은 이준 열사가 보내는 지지에 많은 용기를 얻었다.
국채보상부인회 외에도 지역에서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모금 활동을 펼쳤다. 대구에서는 남일패물폐지부인회, 국채보상탈환회가, 부산에서는 좌천리부인회감선의연회가 조직되었다.
진남포에서는 삼화항패물폐지부인회를 결성해 패물을 모아 보상금으로 내어놓았다.
삼화항패물폐지부인회 제2차 의연 활동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도 은장도, 은가락지, 은귀걸이 등 20원 상당의 은제품을 납부하며 운동에 참여했다.
식사 반찬 가짓수를 줄이거나 머리카락을 잘라 모은 돈으로 의연하는 이도 있었다.

운동에는 기생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대구에서 활동하던 기생 앵무도 그러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의연금 납부를 위해 국채보상수금소에 찾아가 서상돈, 김윤란, 정재학 등에게 이런 말을 꺼냈다.

“저는 본래 천인인데다, 남편도 자식도 없습니다.
국민의 의무로 1,300만 환에 대하여 만분의 일이라도 출연할 터이나, 여자된 도리로 감히 남자보다 한푼이라도 더 낼 수가 없사옵니다.
그러니 100환을 납부하여 누구든지 남자가 일천 환, 일만 환을 출연한다면 저도 기꺼이 죽기를 각오하고 수행하겠습니다.”

그들은 앵무의 배포 넘치는 이야기에 선뜻 의연금을 내었다. 기생들의 참여는 전국에서 일어났다. 평양 국채보상회를 조직할 때에는 주희(酒姬)가 참여했고, 진주에서는 기생들이 진주애국부인회를 조직했다. <대한매일신보>와 <황성신문> 등 4개 신문을 살펴보면 의연금 명단에서 기생과 주희 신분의 이름이 전체 명단에서 21.8%에 달한다. 국채보상운동은 여성 스스로가 역사의 전면에 나서서 남성과 동등하게 국민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최초의 여성운동이 되었다.

기생 앵무에 관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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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앵무에 관한 기사
(‘의연금을 낸 남자’, 황성신문, 1907년 3월 26일자)
의연금을 낸 남자
대구에서 온 소식에 따르면, 그 읍의 퇴기 앵무 씨가 지화 100환을 갖고 국채보상수금소에 와서 서상돈, 김윤란, 정재학 등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말하기를, “저는 본래 천인인데다 남편도 자식도 없지만 국민의 의무로 1,300만 환에 대하여 만분의 일이라도 출연할 터이나, 여자로서 감히 남자보다 한 푼이라도 더 낼 수가 없어서 100환을 납부하였사오니 누구든지 남자가 일천 환, 일만 환을 출연한다면, 저도 기꺼이 죽기를 각오하고 수행하겠습니다”라고 하니 서씨, 김씨, 정씨 등 여러 사람들이 서로 돌아보며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각자 몇 만 환씩 출연하기로 결의하였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