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보상운동 속 숨겨진 의인
(義人)

국채보상운동 속 숨겨진 의인(義人), 그들의 이야기를 살펴본다.

누구나 의연할 수 있소

적은 돈이라도, 희망이 된다면

동냥하여 얻은 돈은 의연금을 납부한 걸인들의 기사
(‘걸인 모씨의 의연’, 대한매일신보, 1907년 6월 9일자)

1907년 2월 25일 저녁, 여덟 명의 절름발이가 원산항 상의소에 도착했다.

우리들도 동포 중 하나인데, 이미 국채보상 이야기를 듣고 근심하던 자도 기뻐하고 병자들도 나아져서 함께 모여 의논하였소.

도합 열아홉 명의 사람들이 부요한 집에 입을 벌리고,
호화한 집에 또한 동냥하여 힘을 다해 구걸한 돈이 겨우 4환입니다.

구걸하는 처지라 해서 국민임을 잊지 않은 그와 같은 이들이 여기저기에서 의연금을 내며 운동에 참여했다.
한 지역에서는 다리를 쓰지 못하는 걸인이 엽전 5냥을 납부하자 이에 감동을 받은 부녀자들도 은가락지와 은장도를 납부하며 함께 의연하고자 했다.

걸인뿐만 아니라 도둑들도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했다. 충주에서는 의연금을 모아 상경한 이들이 도둑 떼를 만나 국채보상금을 약탈당했다. 그러나 자신들이 훔친 돈이 국채보상금임을 알게 되자 도둑들은 이를 다시 돌려주며 10원을 더 보태주었다.

약탈한 국채보상운동 의연금을 다시 되돌려준 도둑들의 기사
약탈한 국채보상운동 의연금을 다시 되돌려준 도둑들의 기사 부분 확대
약탈한 국채보상운동 의연금을 다시 되돌려준 도둑들의 기사(‘도둑도 오히려 의를 안다’, 대한매일신보, 1907년 4월 10일자)
도둑도 오히려 의를 안다
충주군에 사는 사람이 국채의연금을 모집해 상경하다가 도중에 도둑 떼에게 약탈당한지라. 그 사람들이 도둑 떼를 향해 말하기를 이는 국채보상금이니 내가 비록 이 돈을 빼앗겼으나 너희는 불과 몇 십리에 죽음을 면하지 못하리라 하니, 도둑 떼가 놀라 말하기를 “이것이 국채보상금인 줄 전연 몰랐노라” 하고 그 돈을 돌려주며, 또 10원을 보태주며 말하기를 “국채보상금에 보태어 쓰라” 하거늘, 그 사람들이 이름을 물으니, 도둑들이 이르기를 “우리 이름은 가르쳐줄수 없으니, 상경하거든 충주 등지에서 도둑 떼가 국채보상금 10원을 의연했다고 신문에 게재하라” 하였다더라.